작성일
2022.04.25
수정일
2022.04.25
작성자
이준희
조회수
181

[나의 실험실 이야기]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는 방법?

몇 주 전에 학과의 교수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학술대회에서 포스터 발표 심사를 도와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솔직히 바쁘고, 이런 일에 큰 흥미가 없었지만, 연구자로서 봉사활동도 필수 덕목이므로, 하겠다고 답변을 드렸습니다. 총 20명의 발표자가 준비를 했고, 4명의 심사위원이 심사를 맡았습니다. 이번 학회 주제는 Innovation in Molecular Neuroscience이었기에 뇌와 관련된 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주제의 발표들이 있었습니다. 화학/생물학이라는 범주가 너무 커서,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심사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들이 있었습니다. 대략 설명하면, 발표 주제와 관련해서 논리적 전개와 결론 도출에 대한 평가, 발표자의 발표 점수, 그리고 포스터의 구성 및 편집에 대한 점수였습니다. 

포스터 자체에 대한 점수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맨 위 줄에 제목, 그 아래에 저자들 이름, 그리고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어지는 구성이었습니다. 다들 훌륭하게 만들었고, 좋았습니다. 다만, 일종의 착시 현상 같은 것인데, 아무래도 화려한 그림이 있으면 눈길을 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발표 점수를 채점할 때는, 제가 외국인이다 보니 화려한 언변보다는 정확한 설명에 집중했습니다. 확실히 미국 사람들이 영어는 잘합니다. 하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발표자 중에도, 자신이 해야 할 설명을 구체적이고, 간략하게 잘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미국 사람이어서 영어는 잘했지만, 뭔가 표현이 모호하고, 핵심을 겉도는 발언을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가장 점수 차이가 나는 부분은 내용, 즉 논리적 전개와 결론 도출까지의 매끄러운 연결 능력이었습니다.

많은 발표자가, 설명을 요청하면, 제목과 서론을 건너뛰고, 바로 실험 부분부터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설명들을 너무 구체적으로, 불필요하게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 설명을 합니다. 게다가 전문 용어와 줄임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게 따발총처럼 발표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분들에게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습니다. 우선은 제목과 서론을 건너뛰었기 때문에, 생소한 타인의 연구에 대해서 듣게 될 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미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불필요하게 구체적인 설명까지 더해지면 듣는 사람은 금방 흥미를 잃게 됩니다. 전문 용어의 등장은 거의 카운터 펀치를 맞는 기분입니다. 대개는 이런 경우, 다른 전공을 가진 청중들은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더 이상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제목과 서론을 설명하지 않았을까? 저도 같은 연구자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유추해 보니, 나에게 너무 익숙한 연구이다 보니, 제목과 서론은 쉽게 지나치는 것입니다. 사실 그룹미팅에서도 이 문제는 꾸준히 발생합니다. 연구그룹이 작을수록, 연구실 멤버들이 비슷한 연구 주제를 다루다 보면, 제목과 서론을 쉽게 지나치거나, 아예 통째로 넘어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편의상 그룹의 멤버들이 다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넘어가는 것이지, 정확하게 하려면, 일일이 다 설명을 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생략하던 것이 습관이 되면, 학회 발표에서조차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전문용어와 줄임말은 구두 발표에서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당연히 불필요한 내용도 발표에서 생략해야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발표자들을 평가하는 중에, 정말로 훌륭한 발표를 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적절한 시간 동안, 매우 훌륭한 발표를 하였습니다. 그분은 제가 하는 연구와 전혀 관계없는 central neurosystem에 대한 연구 발표를 하셨는데, 저와 같은 비전공자들도 알기 쉽게, 그리고 자세한 내용도 살짝 얹어가면서, 짧은 시간 동안 조리 있게 설명을 했습니다.

심사를 마치고 심사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채점표를 정리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포스터 세션을 맡으신 위원장님께서 심사위원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아주 인상적인 발표자가 있었나요? 저는 자신 있게 한 분을 추천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심사위원들은 아무도 추천을 하지 않아서 결국은 제가 추천한 분이 1등이 되었습니다. 채점표를 정리해 보니, 역시 점수 합계도 그분이 제일 좋았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다들 바쁘다 보니, 요즘은 학교나 연구소를 중심으로 1분/3분/5분 연구주제 발표 대회를 많이 합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발표를 하기 위해서는 발표의 내용을 계속해서 줄여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가장 핵심적인 것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분께 이런 대회에 참여를 권유합니다. 우리의 연구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필 줄 아는 능력, 그리고 그 핵심을 전달하는 능력은 비단 연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실험실 이야기
김종현 (University of Kentucky)
연구실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을 써 봅니다.

출처: [BRIC Bio통신원] [나의 실험실 이야기]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는 방법? (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4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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