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03.30
수정일
2018.03.30
작성자
손님
조회수
162

왜곡된 과학연구의 유통체계와 그 대안

오피니언 남궁석 (2018-03-30 13:09)

과학 연구는 궁극적으로 동료 과학자와 사회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알리는 것으로 완성된다. 즉 논문 출판과 학술대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과학연구활동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며 발표되지 않은 과학 연구는 실제로 논문의 형태로 완성되지 않은 연구 결과는 작가의 머리 속에만 있고 실제로 글로 쓰여지지 않은 소설이나 촬영되지 않은 영화만큼 무의미하다. 즉, 논문이나 학술대회를 통한 연구의 발표는 추상적인 연구를 현실화시키는 연구의 최종 단계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과연 과학 연구의 유통 과정은 제대로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연구 그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지와 마찬가지의 물음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과학연구는 사회의 발전에 상응하여 문제없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갖는 과학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가?

먼저 현행의 과학 연구가 논문 형태로 출판되어 과학정보의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시간, 즉 ‘유통과정에 소요되는 시간’ 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문제를 들 수 있다. 현대 과학에서 연구 결과 자체가 도출되는 시간과, 이것이 논문 형태로 공개되는데 드는 시간을 비교해 본다면 후자가 결코 짧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는 논문의 출판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오히려 더 길어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과학계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소위 ‘새로운 결과’ 혹은 ‘파급효과가 크다고 생각하는 결과’ 가 논문 형태로 동료 과학자들과 대중에게 공개되는 시점은 실제로 해당 연구가 수행된 시점에서 수 년 뒤일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뉴스가 신속히 전달되는 현대사회에서 왜 과학 연구의 결과가 전달되는 것은 이렇게 늦는가? 연구 결과가 학술저널에 출판되기 위해서는 동료 연구자들의 피어리뷰 (Peer Review) 를 거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이 논문을 내고 싶어하는 소위 ‘권위 있는 학술지’ 일수록 피어리뷰 후 게재 거부 후 재 투고, 혹은 여러 단계의 논문 수정 (Revision)과 피어리뷰 과정을 거치게 된다. 특히 여러 번의 게재거부와 재투고를 거듭하다 보면 연구의 내용이 도출되는 기간보다 논문 출판과정에 걸리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피어 리뷰를 통하여 자신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연구 자체가 개선되거나, 혹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결과의 출판이 억제되는 순기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개의 학술지의 피어리뷰 과정은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전문적인 과학 연구 논문을 심사할 수 있는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은 상당수 해당 연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 (같은 분야의 경쟁자) 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익명 피어 리뷰는 과학계의 권력이 악용되는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권위있는 저널에 논문을 투고했더니, 리뷰어의 생트집에 가까운 리뷰를 받고, 이를 논문 수정에 반영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던 중,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거의 비슷한 내용의 논문이 신속하게 게재된 후 리뷰 중이던 논문은 신규성 (novelty)의 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거절되는 것과 같은 사례는 스스로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외에도, 피어리뷰가 해당 연구의 개선에 보탬이 되는 건설적 비평이 아닌 경쟁자를 지연시키고 어렵게 만드는 ‘발목잡기’ 로 전락하는 경우는 현재의 경쟁위주의 과학계에서 만연하여 있다.

또한 연구가 실제로 수행되고 공개되는 시점에 큰 차이가 남으로써, 중복 연구와 연구비의 낭비가 초래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요즘과 같은 정보화 사회에 최신의 연구 결과가 도출된 후 수 년의 시간을 거친 다음에야 동료 연구자에게 공개되는 것보다는 가능한 그 기간을 줄이는 것이 과학의 발전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두번째로 지적되어야 하는 점은 현행의 상업적인 출판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논문 배포가 과연 현재의 과학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이다. 알다시피 대개의 학술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일단 국가 혹은 비영리단체로부터 받은 연구비로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의 모든 컨텐츠를 저자가 작성하여, 논문을 투고한다. 그러면 대개 학계의 동료 연구자들이 투고된 논문을 무보수로 심사하고, 주로 이들의 의견에 따라서 논문의 게재 여부가 결정된다. 논문이 게재되면 저자는 적지 않은 금액의 논문 게재료를 저널 측에 납부하여야 하며 (물론 이 비용 역시 대개는 국가 등에서 수혜 받은 연구비에서 지급된다), 논문이 출판되기 위해서는 저자는 논문의 저작권을 저널을 출판하는 출판사로 이전하는데 동의해야 한다. 국가 연구비를 들여서 연구가 수행되고, 또 국가의 연구비의 일부를 들여서 상업적인 출판사에 저작권이 귀속된 연구의 내용은 학교나 연구기관의 도서관을 통해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열람권을 지불하여야 찾아볼 수 있으며 만약 이러한 경로가 아닌 곳을 통해서 연구 결과를 찾아보려면 논문 1편당 수십 달러에 해당하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즉 논문이라는 형태의 과학 연구의 최종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드는 비용은 대개 국가가 치루고 연구 및 논문 작성, 논문 리뷰 등의 제반 작업의 대부분은 연구자가 수행했지만 여기에서 창출되는 이익은 전액 상업적인 출판사가 차지하게 되는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일까? 특히 애플 등의 거대IT 기업이나 생각할 수 있는 연간 36% 의 이익률을 자랑하는1 거대 학술 출판사 옐스비어 (Elsevier)와 같은 거대 과학관련 출판사는 현행의 과학 지식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어떠한 기여를 하였고, 과연 이런 막대한 이익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물론 저널의 출판 관행에 익숙해진 과학자들이라면 ‘과학 출판은 이전에도 그래왔다’ 라고 이러한 관행을 당연시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의 모든 과학 연구가 기부, 혹은 사비로 이루어졌고, 과학정보의 유통이 책으로 배포되는 학술 저널로 배포되던 시기에 돈이 될 리가 없는 저널 출판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던 논문 출판에서의 관행이 현재의 인터넷 시대에까지 이어지는 것은 극히 부당한 일이다. 그리고 일부 거대출판사들의 집중이 계속되어가며, 저널의 서열화와 몇몇 거대 출판사의 권력화는 과학 자체의 신뢰성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왜 사이언스, 네이쳐와 같은 ‘세계적인 과학잡지’ 는 그렇게 엄정한 리뷰 과정을 거친다고 하면서 여기에 나오는 논문들은 학계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일이 많을까? ‘특별한 주장은 특별한 증거를 요구한다’ (Extraordinary claims require extraordinary evidence) 와 같은 원칙은 왜 ‘세균의 DNA에 인 대신 비소가 들어가 있다2 내지는 ‘pH 변화만으로 성체세포를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만능세포로 만들 수 있다’ 와 같은 쇼킹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만,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나는 논문의 리뷰 과정에서 잘 적용되지 않을까?

저널의 서열화가 임팩트 팩터 (Impact Factor)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실 역시 현행의 과학 정보 유통체계를 혼란시키는 주범이다. 더욱이 임팩트 팩터가 저널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 저널에 대한 연구업적의 질적인 평가 수치로 오용되고 있는 현실은 약탈적 저널 (predatory Journal) 의 등장을 낳는다. 즉, 신생 저널이 처음 몇 년간 한정된 편수의 논문과 리뷰 논문을 집중적으로 실어 인위적으로 임팩트 팩터를 끌어올린 이후, 상대적으로 높은 임팩트 팩터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허술한 리뷰 과정) 를 미끼로 논문 수를 늘리는 저널들의 예는 종종 등장해왔다. 물론 임팩트 팩터가 오른 후 갑자기 논문 수 (특히 임팩트 팩터에 민감한 몇몇 국가 유래의 논문이 많은) 가 오른 이후에 논문이 예기치 않게 사라지거나, JCR (Journal Citation Reports)에서 퇴출되어3 연구업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해프닝은 비일비재하다. 또한 해마다 JCR 에서 그 전 해의 임팩트 팩터가 공개될때 브릭과 같은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연구자들의 임팩트 팩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면, 과연 약탈적 저널의 창궐에 대해서 연구자들의 책임을 과연 배제할 수 있을까? 이러한 약탈적 저널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이미 논문을 낸 저널의 임팩트 팩터의 등락에 마치 가상화폐 가격이 등락하는 것처럼 희열과 아픔을 느끼는 세태가 바람직할까?

이러한 현행의 저널 출판 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꽤 이전부터 구체화되었다. 가령 상업적인 저널이 국가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연구결과를 자신들의 페이월 (Paywall) 에 가두고 사유화한다는 것에 대한 반발로, 미국 정부에서는 NIH 연구비로 수행된 연구에 대해서는 1년 내에 Pubmed Central (PMC)에 전문을 공개하여야 한다는 규칙을 마련하였고, 저널 내용의 이용에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는 오픈 억세스 (Open Access) 정책을 표방하는 저널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임팩트 팩터에 의한 저널 서열화와, 임팩트 팩터가 저널이 아닌 저널에 실린 연구결과의 서열화에 사용되어, 개인의 채용, 승진, 업적평가에 응용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연구 평가에 대한 샌프란시스코 선언 (San Francisco Declaration on Research Assessment) 이 2012년 발표되었다5. 또한 피어리뷰 형식의 논문 출판 환경에서 연구 결과의 공개가 늦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문 원고의 프리프린트 (Preprint) 의 공개가 생물학계에도 일반화되고 있으며, 생물학 관련 논문의 프리프린트 서버인 Biorxiv (https://www.biorxiv.org) 에 저널 논문 투고 이전에 원고를 공개하는 것은 점차적으로 대세가 되고 있다. 급기야 기존 저널들의 경우에도 프리프린트 서버에서부터의 논문 투고를 직접 지원하거나, 프리프린트 서버에 올라온 원고를 대상으로 저널의 편집자가 투고를 권유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현행의 과학저널에서의 논문 투고 방식에서 변혁을 주장하는 대안들이 제안되고 있다다6. 즉, 논문 투고를 하고, 오랜 기간의 비공개적인 피어 리뷰를 통해서 논문의 게재여부를 저널의 에디터가 결정하는 것 대신, 일차 스크리닝을 거친 논문에 대해서 피어리뷰를 거친 후, 논문의 게재 여부를 저자가 결정하거나, 프리프린트와 같은 저널을 대치하는 출판 플랫폼에 피어리뷰를 거쳐 피드백을 받은 논문들을 게재하는 형식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모색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모델은 학술 논문이 이미 출판되면 고정되어 버리는 종래의 모델 대신, 출판 이후에 동료들의 지적과 비판 속에서 업데이트되고 버전업 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아마도 논문의 영향력은 개별 논문의 인용빈도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요즘 인기 있는 블록체인 기반 퍼블리싱 시스템인 steemit 에서 볼 수 있는 ‘보팅’ Voting 시스템 같은 것이 도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시급히 인식해야 할 것은 현행의 저널 시스템은 17세기의 영국 왕립학회를 원류로 하고, 우편으로 논문 원고를 보내고, 종이로 된 저널을 우편으로 배송하던 시대에 기반한 시스템이고, 여러모로 현대의 정보화 사회에는 걸맞지 않는 과학 정보의 유통 시스템이며, 이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개개인의 연구자들의 선호도와는 상관없이 진행될 ‘대세’ 라는 점이다.

그러나 해외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과학 연구 정보의 유통체계의 변화에 대해서 과연 한국의 연구자들과 정부, 학교, 연구기관은 여기에 대해서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당장 언론에 소개되는 연구 업적에서 저널 이름과 IF가 명기되는 경우가 많고, 이 글이 소개되는 브릭에서도 2000년대 초반 시작된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 이라는 IF 10점 이상의 저널에 논문을 내는 한국인 저자를 소개하는 코너가 아직도 인기리에 유지되고 있으며, 정부의 연구과제 선정에서 연구책임자가 발표한 논문의 IF와 저널 IF 의 학문 분야별 순위가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고, 또한 최근에 ‘약탈적 저널’ 로 규정되어 SCI-E에서도 퇴출된 저널에 게재된 논문이 상당부분의 논문이 한국 유래의 논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7, 외국에서의 과학 연구 정보 유통체계의 개혁의 바람이 한국에서 체감되어 실천되려면 다소(?) 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 주석
1. https://www.timeshighereducation.com/news/elseviers-profits-swell-more-ps900-million
2. Wolfe-Simon, F., Blum, J. S., Kulp, T. R., Gordon, G. W., Hoeft, S. E., Pett-Ridge, J., ... & Anbar, A. D. (2011). A bacterium that can grow by using arsenic instead of phosphorus. science, 332(6034), 1163-1166. 참고로 이 논문의 결과는 이후의 논문에 의해서 반박되었으나 원 논문은 철회되지 않았다.. Erb, T. J., Kiefer, P., Hattendorf, B., G?nther, D., & Vorholt, J. A. (2012). GFAJ-1 is an arsenate-resistant, phosphate-dependent organism. Science, 337(6093), 467-470.
3. Obokata, H., Wakayama, T., Sasai, Y., Kojima, K., Vacanti, M. P., Niwa, H., ... & Vacanti, C. A. (2014). Stimulus-triggered fate conversion of somatic cells into pluripotency. Nature, 505(7485), 641.원 논문은 철회되었고 해당 논문이 재현되지 않았고, STAP 세포라고 보고된 것은 ES세포 유래임이 보고되었다.De Los Angeles, A., Ferrari, F., Fujiwara, Y., Mathieu, R., Lee, S., Lee, S., ... & Wu, Z. (2015). Failure to replicate the STAP cell phenomenon. Nature, 525(7570), E6; STAP cells are derived from ES cells
4.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1/2018010101621.html
5. https://sfdora.org/read/
6. http://asapbio.org/digital-age
7. Scopus검색에 의하면 학술지 ‘Oncotarget’에 2017년 게재된 논문 8,949건 중 소속기관을 ‘Korea’로 하여 검색된 논문은 497건으로 전체 논문의 5.5%에 속한다. 참고로 같은 기간 중국에서 투고된 논문은 5046건으로 56% 을 차지하였고, 미국 유래 논문은 1945건으로 21%, 일본은 322건으로 3.5% 를 차지하였다.

남궁석 (MadScientist in Secret Lab of Mad Scientist)


첨부파일
첨부파일이(가) 없습니다.
다음글
[과학협주곡-27] 21세기의 이공계 대학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준희 2018-06-04 00:00:00.0
이전글
‘세균학의 아버지’가 된 시골의사
이준희 2018-03-18 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