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02.15
수정일
2018.02.15
작성자
손님
조회수
140

BioTalk_공감 (21) 미생물의 도시

BioTalk_공감 (21) 미생물의 도시

천사의 도시, 로스엔젤레스 (Los Angeles)

캘리포니아에는 유독 스페인어 지명이 많다. 스페인 탐험가들이 캘리포니아를 정복하면서 그들이 존경하던 성인들의 이름을 따서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샌디에고 같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물론 로스엔젤레스 (Los Angeles)라는 이름도 스페인어이다. 멕시코에서 함께 이주한 카톨릭 신부와 신도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우리 천사 중 여왕의 광장”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나중에 “천사의 도시”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역사 속에 가려진 사악한 스페인 정복자들 때문에 인디언들이 당한 고통과 그들이 흘린 피를 생각하면 로스엔젤레스는 참 아이러니한 이름이다. 어쨌든 인간의 발자취가 이어지는 곳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이동하고 정착하는 과정이 필연이다. 그들은 함께 황무지를 일구어 삶의 터전을 만든다. “No one is an island, 인간은 섬이 아니다.누구나 대륙의 일부이고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 라는 존 던 (John Donne)의 시처럼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인 우리는 마을을 이루고 공동체의 일부로 살아간다.

물론 미생물도 자연에서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미생물이 발견되는 어느 곳에서든 다양한 종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미생물을 독야청청 우아하게 사는 단세포 생물 쯤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처음 인식된 미생물은 “질병 유발자”였고, 미생물 연구의 주제도 “특정한 전염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누구일까” 였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로버트 코흐 (Robert Koch, 1843 ? 1910)라는 위대한 미생물학자가 모든 전염병은 미생물이 일으키며, 특정 미생물이 한 종류의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일균일병설 (Germ Theory)”을 설파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미생물을 순수배양 (pure culture)하고 연구하는 것이 정석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안락한 배양액에서 자라는 미생물의 대사과정이 자연에서도 그럴 것이라는 오해를 하게 되고, 한동안 미생물 생태 연구는 삼천포로 빠지게 된다. 물론 순수배양기술이 없었다면 그동안 쌓아온 미생물 연구도 불가능했겠지만, 큰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파고 다닌 셈이니 반쪽짜리 연구라고나 할까? 다행히도 자연에서 어울려 사는 미생물 공동체를 제대로 인식하고 연구하는 미생물학자들이 늘어나면서, 미생물 연구의 패러다임도 혼자 사는 단세포 생물인 미생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부로 살아가는 미생물로 전환되었다.

미생물의 도시, 로스마이크로비오스 (Los Microbios)

자연에서 미생물은 생물막 (biofilm)이라고 불리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도시를 만든다. 여기저기 휩쓸려서 다니던 단세포들이 모여 이룬 생물막은 그들이 단단하게 뭉쳐서 살 수 있게 한다. 강가의 돌 위에 미끈미끈하게 끼어 있는 얇은 막이나, 수도관이나 구조물 안에 붙어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생물막을 볼 수 있다. 미생물은 우리 몸 구석구석에도 끊임없이 생물막을 만든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하는 양치질은 그들이 밤새 지어 놓은 생물막을 제거하는 일이다. 입속에 있던 생물막이 칫솔질을 하는 동안 옮겨 가면 칫솔모에도 열심히 집을 지을 것이다. 만약 컨텍렌즈를 씻는 것을 게을리 했다면 촉촉한 렌즈 표면에도, 목욕탕의 뜨끈한 김이 타일에 맺혀 있다면 거기에도 그들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고 있을 것이다.

생물막은 마치 건축가가 잘 지은 건물처럼 단단하고 균형잡힌 구조이다. 건축물을 지을 때 벽돌을 한장한장 올리기만 한다면, 벽을 미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벽돌사이에 시멘트를 굳혀서 벽돌을 붙인다. 미생물 세포 하나하나는 건축물을 짓는 벽돌이다. 그들을 연결하기 위해서 미생물들은 세포외 기질(extra cellular matrix)이라는 다당류 복합체를 세포 밖으로 분비한다. 이들을 연결하는 시멘트인 셈이다. 세포외 기질은 미생물 표면을 서로를 연결하는 것 뿐 아니라 건물 표면에 보호막을 지어서 환경에 저항할 수 있게도 한다. 미생물은 독립생활을 할 때는 이 유기물을 만들지 않고, 세포막을 만들 때만 분비한다. 유기물을 쓸 일이 없으니 공장을 돌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생물은 어떻게 독립생활 할 때와 생물막을 만들어야 할 때를 구분하는 지 신기할 따름이다. (다음회에서)

나만 믿고 따라 와..

미생물의 도시도 우리와 비슷한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역사 속의 개척자들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세상을 알리는 일을 했다. 마찬가지로 미생물의 도시도 개척자 미생물들이 시작한다. 소수의 개척자들이 도시를 지을 터를 발견하면 둥둥 떠다니던 생활를 접고 표면에 부착한다. 개척자를 따라 정착한 소수의 미생물들은 빠르게 분열하면서 개체수를 늘린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의 숫자가 되면 미생물들은 서로를 끈적하게 해서 단단하게 붙은 작은 마을을 형성한다. 구조가 점점 복잡해지면 마을 사이에 길이 생기고, 새로운 구조들이 들어선 커다란 도시가 된다. 생물막에 살게 된 미생물은 사는 방식과 역할에 따라 각각 다른 위치에 자리를 잡는다. 마치 대도시 다운타운을 선호하는 사람과 주변 한적한 지역을 좋아하는 사람이 갈리는 것 같다. 거대한 생물막 안쪽은 산소투과도도 떨어지고 양분도 비교적 적기 때문에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살 수 있는 미생물이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라면서 구조를 지탱하는 머팀목이 된다. 생물막 바깥쪽의 미생물은 도시 표면에 보호막을 형성하기 위해서 활발한 대사활동을 하고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분열하는 세포들 중 일부는 생물막에서 분리되어서 새로운 마을을 찾아 떠나는 개척자들이 된다.

"도시"에 함께 사는 미생물들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다. 미생물은 우리가 분비해내는 액체들에 씻겨 내려가지 않기 위해 단단히 붙어서 생활한다. 미생물이 일으키는 감염의 80% 정도가 생물막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생물막을 형성한 미생물은 덩치가 커서 면역세포에게 쉽게 잡아먹히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세포가 분사하는 면역 물질에도 저항한다. 미생물이 생물막을 형성하면 항생물질에도 내성이 생긴다. 생물막을 형성하는 미생물은 부유하는 개체보다 항생제에 1000배정도 내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몬타나 주립대학의 Stewart 박사의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를 보면, 표면의 미생물이 죽더라도 안쪽의 미생물이 더 단단한 생물막을 짓는다. 생물막에 항생물질을 처리하고 300분 동안 3-D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아래 그림처럼 처음 150 분 동안은 미생물이 죽어간다 (빨간색은 죽은 세포이다). 225분쯤 되니 연두색이 점점이 보인다. 살아있는 세포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300분이 지나면 두꺼운 생물막구조가 파릇파릇하게 살아난다. 게다가 다른 세포들보다 더 내성이 생긴 세포도 등장한다 (짙은 초록색 점). 뿐만아니라, 항생제를 사용하면 평소에 단독행동하던 미생물도 생물막을 형성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혼자서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미생물은 환경을 감지하고 소통하면서 살아 남는다.

생물막은 여러 미생물이 손을 잡고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이다. 판이하게 다른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들이 단단하게 붙어 보호막을 뒤집어 쓰고 어울려 있다. 잘 조직된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체들이 몰려있는 것이 아니다. 각 개체들이 활동을 조정하고 협동하기 위해 소통해야 한다.미생물의 도시에서는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상대방의 언어를 읽어내고 도시를 만드는데 힘을 모은다. 그들은 서로 협력하고 견제하면서 균형 잡힌 도시를 만들고 유지한다. 그리고 그 관계가 지속되면 생물막 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생기고, 그들은 서로 돕는 관계로 진화한다. 우리는 미생물의 도시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도시에서 살고 있다. 분명 이 도시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와는 함께 손을 잡고 돕기도 해야 한다. 나의 삶이 도시의 삶과 연계되고 내가 한 일이 도시의 모양을 바꿀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도시를 지어가야 할까?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면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박현숙 (California State Univ. LA)

"미생물학자, '공부해서 남 주기’를 모토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합니다.
생명현상을 들여보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봅니다.
그들의 삶은, 그리고 우리의 삶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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