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02.15
수정일
2018.02.15
작성자
손님
조회수
159

BioTalk_공감 (20) 정체성

BioTalk_공감 (20)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

어떤 무용수가 백조 분장을 하고 백조 춤을 추고 있다. 이 사람은 백조인가, 사람인가, 아니면 백조인 척 하는 사람인가? 무용수는 자신을 백조라고 할 수도 있고, 무용수라고 할 수도 있다. 또 백조인 척 하는 무용수로 규정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무용수를 자신이 보는 것과 다르게 규정할 수도 있다. 그들이 백조 춤에 빠져든다면 그는 백조가 된다. 만약 그들이 무용수의 춤보다는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에 집중한다면, 그는 춤을 추는 사람, 혹은 백조인 척 하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마음의 생태학, 그레고리 베이트슨). 이 모든 생각의 기준은 내가 바라보는 나의 본질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나를 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곰팡이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

진화 과정에서 곰팡이는 육상생활을 처음 시작한 생물들 중 하나였다. 곰팡이는 물에서 땅으로 올라와 습기가 있는 촉촉한 땅으로 스며들었고, 식물, 동물에도 안착했다. 곰팡이는 어느 곳에 자리잡으면 움직이지 못하고 가까이에 있는 양분을 흡수해서 에너지를 얻었다. 곰팡이의 육상 생활은 녹록치 않았고 종종 굶주림에 시달렸다. 가까운 곳의 양분을 모두 소진해 버린 곰팡이는 그 자리에서 죽게 되거나 살아남을 길을 궁리했다. 몸을 조금씩 늘려서 뻗어나가기 시작해서는 길쭉하고 가지가 있는 균사 (hyphae) 를 만들었다. 곰팡이는 균사를 늘리고 가지를 치면서 방사형으로 자라 균사체 (mycelium)가 되고, 점점 더 자라서 우리 눈에도 보이는 포슬포슬한 큰 덩어리를 만들게 된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곰팡이의 모습이다.

균사체는 자라는 방향으로 뻗은 가지 끝 쪽에서 성장이 계속된다. 마치 나무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가는 것과 같다. 우리의 머리카락이나 털은 뿌리 쪽에서 성장이 일어나는 것과 정 반대인 셈이다. 균사체가 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데에는 폴라리솜(polarisome) 이라는 단백질 복합체가 큰 몫을 한다. 이 단백질 복합체는 균사체 끝 쪽으로 모여서 끝부분이 계속 자라도록 압력을 가하면서, 자라는 가지를 계속 이어나가도록 세포 합성 효소들을 불러모은다. 그리고, 이 단백질 복합체는 자라는 환경을 인지하기도 하고, 가다가 막힌 곳을 만나면 그 자리를 피해서 돌아가기도 한다. 균사체는 한 시간에 몇 센티미터를 자라기도 하고, 균사체가 뻗어나가는 힘은 식물이나 동물의 조직을 뚫을 정도로 막강하다.

모든 미생물의 삶이 그렇겠지만, 곰팡이가 사는 주변에는 한 자리에서 서로 돕거나 경쟁하는 많은 생물들이 있다. 곰팡이의 삶이 심각하게 위협받기도 한다. 균사체 덕분에 좀 더 멀리 뻗어나간 곰팡이는 양분을 찾기는 했지만 세포 안으로 들여 오기가 만만치 않았다. 곰팡이 주변에 자리잡은 재빠른 녀석들은 쉽게 흡수할 수 있는 양분을 이미 차지해 버렸고, 남은 것들은 나무 껍질이나 섬유질처럼 덩치가 큰 고분자 물질들이 대부분이었다. 곰팡이는 나무껍질이나 섬유질 같은 복잡한 화합물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어 세포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효소들은 주변에 있는 복합 물질을 분해했고, 곰팡이는 작게 잘라진 양분을 흡수하게 되었다.

천천히 자라는 곰팡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미생물 때문에 삶을 위협받기도 했다. 어떤 녀석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곰팡이가 분해한 양분을 먹어 치워 버리기도 했다. 곰팡이는 천천히 자라고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에 여러가지 화합물을 만들 수 있었다. 그 화합물을 세포 밖으로 분비했더니 어떤 녀석들이 금새 나자빠져 버린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지만, 주변의 경쟁자를 물리치는 독소나 항생물질을 만들게 된 셈이다. 어쨌든 귀찮은 녀석들을 평정하고 살 만한 공간을 얻었다. 그런 환경에 적응하면서 곰팡이는 다양한 화합물질을 합성하는 화학공장이 되었다. 곰팡이가 적응하고 삶을 꾸려나가는 자리에서 곰팡이의 정체성이 형성된 셈이다.

어떤 생물의 정체성을 규명하려면 생김새, 삶의 유형,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생명체와 생태계까지도 확대해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생물의 정체성은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곰팡이는 독특한 세포구조와 생화학 작용을 하면서 다른 동식물, 혹은 미생물들과 다양한 종류의 공생관계에 있다. 또한 곰팡이는 생태계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면서 생태계를 구성하고 순환하는 데에 꼭 필요한 생물이다. 곰팡이는 죽은 나무와 유기체를 분해하고 식물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동물의 몸 속에 사는 곰팡이는 복잡한 식물 성분을 분해하고 다양한 성분을 합성하기도 한다. 그 반대로 곰팡이는 식물과 동물에 병을 일으키고 치명적인 해악을 입히기도 한다. 지구가 탄생한 이래 별동별이 떨어져서 새로운 암석이 지구에 유입되는 것 말고는, 모든 성분들은 미생물에 의해 순환되고 재활용된다. 그 중심에 곰팡이가 있다.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고나 할까?

곰팡이, 너는 누구냐? (우리가 본 곰팡이)

곰팡이 연구 초기에 많은 학자들은 곰팡이가 식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곰팡이에게 잘못된 정체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곰팡이가 자라는 모양과 구조가 식물과 비슷하게 생겨서 그랬을까? 꽤 오랫동안 곰팡이는 식물군에 묶여있었다. 우연히도 곰팡이와 식물 모두 한 곳에 자리를 잡으면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자랄 뿐 움직이지 못한다. 곰팡이의 균사를 뿌리라고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식물의 뿌리와 모양은 비슷하다. 그리고 식물과 곰팡이는 진핵세포 중 세포벽을 가진 유일한 그룹이다. 하지만 식물은 빛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광합성을 하는 생태계의 생산자로, 곰팡이는 그런 양분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얻는 소비자로 생태계에서 명백하게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오히려 곰팡이는 우리와 비슷한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고 (19회),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곰팡이들도 양분을 분해하고 산소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얻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말은 생물학적으로 맞는 표현이다. 그리고 생태계에 존재하는 곰팡이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되면, “곰팡이는 이것이다” 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포인트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곰팡이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곰팡이와 처음 만난 경험에 빠져서 곰팡이의 한쪽 면만을 보고 “곰팡이는 이렇다” 라고 말하면서 한 쪽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나는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곳, 매일 만나는 사람들,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의 모습들을 모두 어우르는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나의 시선은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가. 내가 바라는 행복한 삶이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의 답을 적어 나가다 보면 나의 정체성이 보이지 않을까?

“당신이 발 딛고 서있는 자리가 당신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 말이 문득 마음에 와 닿는다.

박현숙 (California State Univ. LA)
"미생물학자, '공부해서 남 주기’를 모토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합니다.
생명현상을 들여보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봅니다.
그들의 삶은, 그리고 우리의 삶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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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2018-02-15 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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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2018-01-01 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