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약학 양병찬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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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적인 머신러닝(machine-learning) 접근방법이 1억여 개의 분자 풀(pool)에서 강력한 항생제들을 발견했는데, 그중 하나는 (결핵균과 난치성 세균을 비롯한) 다양한 세균에 대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발견한 할리신(hallicin)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발견된 최초의 항생제다. 지금껏 AI가 항생제 발견과정의 일부를 도운 적은 있지만, 인간의 가정에 일절 의존하지 않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전혀 새로운 항생제를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연구팀은 말했다. MIT의 합성생물학자 짐 콜린스가 이끈 이번 연구결과는 2월 20일 《Cell》에 발표되었다(참고 1).
"한마디로, 이번 연구는 놀랍다"라고 피츠버그 대학교 펜실베이니아 캠퍼스의 제이콥 듀런트(계산생물학)는 말했다. "연구팀은 후보물질만 발견한 게 아니라, 동물실험을 통해 유망한 분자를 검증하기까지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접근방법이 다른 유형의 약물(예: 암이나 신경퇴행질환을 치료하는 약물)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항생제에 대한 세균의 저항성이 전 세계에서 극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연구자들은 '신약이 빨리 개발되지 않을 경우, 2050년까지 매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저항성 감염증 때문이 목숨을 잃을 것(참고 2)'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새로운 항생제의 발견과 승인은 지체되었다. "연구자들은 똑같은 분자들을 반복적으로 발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작동 메커니즘'을 가진 '새로운 화학'이 필요하다"라고 콜린스는 말했다.
당신의 가정(假定)일랑 잊어라
콜린스가 이끄는 연구팀은 신경망(neural network)―뇌의 아키텍처에서 영감을 얻은 AI 알고리즘―을 개발했는데, 그것은 분자의 속성을 원자 단위로 학습한다.
연구팀은 항균활성이 알려진 2,335개의 분자 컬렉션을 이용해 신경망을 훈련시켜, 대장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분자를 찾게 만들었다. 그 분자 컬렉션에는 300개의 기(旣)승인 항생제 라이브러리와, 식물·동물·미생물에서 채취된 800개의 천연제품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알고리즘은 '약물의 작동방식에 대한 가정'이나 '분류된 화학기(基)'를 깡그리 무시한 상태에서 분자의 기능을 예측하는 방법을 학습한다"라고 MIT의 AI 연구자이자 이번 연구의 공동저자인 레지나 바질레이는 말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모델은 인간 전문가가 모르는 새로운 패턴을 학습할 수 있다."
훈련이 완료된 후, 연구팀은 AI를 이용하여 약물용도재지정허브(DRH: Drug Repurposing Hub)를 검색했다. DRH는 인간의 질병에 필요한 분자를 조사하기 위한 라이브러리로, 약 6,000개의 분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연구팀은 AI에게 전통적 항생제와 달라 보이는 분자들만을 보여주며, '어떤 분자가 대장균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인가?'라고 물었다.
AI가 제시한 분자들 중에서, 연구팀은 약 100개의 후보물질을 선별하여 물성시험(physical testing)을 실시했다. 그중 하나는 당뇨병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타진 받던 것이었는데, 강력한 항생제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의 이름을 따서, 그 분자를 할리신(halicin)이라고 명명했다.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할리신은 광범위한 병원체들에 대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는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리(Clostridioides difficile)와, 새로운 항생제가 시급히 요망되는 범저항성(pan-resistant) 세균인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가 포함되어 있었다.
양성자 차단
항생제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경유하여 작동하는데, 그중에는 '세포벽의 생합성', 'DNA 수리',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를 차단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할리신의 메커니즘은 비전통적인 것으로, '양성자의 세포막 통과'를 차단하는 것이다. 초기 동물실험에서, 할리신은 독성이 낮으며, 저항성을 단호히 배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실험에서, 다른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은 전형적으로 하루 이틀 사이에 등장했지만, 30일이 지난 후에도 할리신에 대한 저항성은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콜린스는 말했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ZINC15이라는 데이터베이스에서 1억 7백만 개 이상의 분자구조를 검색하여 23개의 분자를 선별했다. 뒤이어 실시된 물성시험에서, 항균활성을 가진 것은 8개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8개 중 2개는 광범위한 병원체에 강력히 대항하며, 심지어 항생제 저항성 대장균을 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컴퓨터를 이용한 잠재적 약물 발견 및 속성 예측'의 좋은 사례다"라고 카네기 멜론 대학교 피츠버그 캠퍼스의 밥 머피(계산생물학)는 말했다. "AI를 이용한 방법은 지금껏 거대한 '유전자 및 대사물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새로운 항생제를 포함한) 유용한 분자들을 발견해 왔다(참고 3, 참고 4)."
그러나 콜린스가 이끄는 연구팀에 의하면, 그들의 접근방법은 기존의 방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즉, 그들은 '특정한 구조나 분자군'을 검색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활성을 지닌 분자'를 찾도록 신경망을 훈련시킨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할리신의 임상시험 파트너를 정하기 위해, 외부의 연구팀이나 업체를 물색하고 있다. 또한, 연구팀은 접근방법의 범위를 확대하여, 더 많은 항생제를 발견하고 밑바닥에서부터 분자를 설계할 예정이다. "이번 연구는 개념증명(proof of concept)으로, ‘AI가 뭘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뒀다"라고 바질레이는 말했다.
※ 참고문헌
1. https://doi.org/10.1016%2Fj.cell.2020.01.021
2.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9-01409-x
3. https://doi.org/10.1021%2Fcb500199h
4. https://doi.org/10.1016%2Fj.cels.2019.09.004
※ 출처: Nature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0-00018-3